천성(天性)의 생성(生成)

천성(天性)의 생성(生成)

천성(天性)이라 함은 선(善)이 일음일양(一陰一陽)하는 도(道)에서 계생(繼生)하여 여문 것이니 선(善)과 성(性)은 어떻게 서로 관련(關聯)되어 있는가 하면, 건괘(乾卦)에는 원(元)을 인(仁)이라 하고 인(仁)에서 발(發)하는 작용(作用)을 선(善)이라 하는데, 만물(萬物)의 씨는 원(元)의 상(象)이 되므로 씨의 알맹이는 인(仁)이 되며, 씨의 알맹이를 인(仁)이라 하므로 씨에서 발생(發生)하는 새싹은 선(善)이 되는 것이며, 천성(天性)과 씨는 그 조직형태(組織形態)가 동일(同一)하므로 천성(天性)의 알맹이는 또한 인(仁)이 되고 인(仁)에서 발생(發生)하는 작용(作用)은 선(善)이 되는 것이니, 천성(天性)에 인(仁)과 선(善)을 말하는 것은 이 까닭이다. 인(仁)은 천성(天性)의 알맹이이오 선(善)은 천성(天性)의 인(仁)에서 생(生)하는 새싹이라, 새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아서 여무는 때에 다시 알맹이인 인(仁)이 생겨서 천성(天性)이 되는 것이니, 이가 곧 선(善)이 계생(繼生)하여 여문 것이 천성(天性)이라 함이오 만일 새싹이 계생(繼生)하더라도 그것이 여물지 못하면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가 되어 생생(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천성(天性)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천성(天性)은 반드시 선(善)하여 새싹이 계생(繼生)하는 것이므로 천성(天性)을 선(善)하다고 하는 것이오 사람이 만일(萬一) 육체(肉體)를 기르기에만 힘쓰고 불선(不善)을 행(行)하면 불선(不善)은 쭉정이의 상(象)으로서 알맹이가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천성(天性)을 이루지 못하고 본능생활(本能生活)만을 하는 동물성(動物性)이 되고 마는 것이다.

초목(草木)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화(花)이오 화(花)에는 색(色)과 향(香)과 밀(蜜)이 있는데, 색(色)은 광(光)이오 광(光)은 목(目)에 속(屬)하여 이괘(離卦)의 상(象)이 되고 향(香)은 취(臭)이오 취(臭)는 비(鼻)에 속(屬)하여 손괘(巽卦)의 상(象)이 되고 밀(蜜)은 미(味)이오 미(味)는 구(口)에 속(屬)하여 태괘(兌卦)의 상(象)이 되니 화(花)의 아름다운 것은 이 삼음괘(三陰卦)의 상(象)을 인(因)함이오 인체(人體)의 육체미肉體美가 주(主)로 면상(面上)에 있는 것은 면상(面上)에 목비구(目鼻口)의 삼음괘(三陰卦)의 화상(花象)이 있는 까닭이다. 화(花)는 삼음괘(三陰卦)의 형질(形質)로써 조직(組織)된 까닭에 그 아름다움이 외형(外形)에 나타나고 있으나 화(花)의 형질(形質)은 오래 지속(持續)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노쇄(老衰)하여 떨어지는 것이며, 화(花)에 열매가 맺힌 연후(然後)에 그 열매의 미(美)가 새로 나타나서 그것이 영원(永遠)히 계속(繼承)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화(花)의 참다운 아름다움은 화(花)의 형질(形質)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花)의 속에서 열매가 맺혀서 여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사람도 그 형질(形質)은 백년인생(百年人生)으로 되어 있으되 그 천성(天性)이 여문 것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여 영원(永遠)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니, 형질(形質)이 비록 아름답다 하더라도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결국(結局) 쭉정이의 인간(人間)이 되고마는 것이다. 천성(天性)의 조직(組織)은 씨와 같으므로 또한 씨와 같이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이 있는 것이오, 씨는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는데, 수화(水火)의 정(精)은 기(氣)와 형(形)의 중간성(中間性)으로 되어 유형(有形)도 되고 무형(無形)도 되고하여 만물(萬物)의 체내(體內)를 유행(流行)하면서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취산작용(聚散作用)을 행(行)하고, 만물(萬物)의 체(體)는 정기(精氣)가 취(聚)하면 생(生)하고 정기(精氣)가 산(散)하면 사(死)하는 것이므로 만물(萬物)의 생장성(生長成)의 변화(變化)는 모두 만물(萬物)의 체내(體內)를 유행(流行)하고 있는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며 천성(天性)도 씨와 같이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으므로 또한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이 있어 인(仁)에서 선(善)이 계생(繼生)하여 여문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되는 것이다. 씨의 생장성(生長成)하는 과정(過程)에는 나무에 수액(水液)이 오르고 내리고 지엽(枝葉)이 생(生)하고 마르고 하는 변화(變化)가 있으므로 천성(天性)의 생성(生成)하는 과정(過程)에도 또한 이러한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건도(乾道)의 약진변화(躍進變化)하는 이(理)로써 보면, 천성(天性)이 자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생활(精神生活)의 약진(躍進)이오 천성(天性)의 여무는 것은 사람의 정신생활(精神生活)의 변화(變化)이라, 사람의 일생중(一生中)에 한번은 정신생활(精神生活)의 약진(躍進)이 있은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자라는 것이오, 사람의 일생중(一生中)에 한번은 정신생활(精神生活)의 변화(變化)가 있은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하단(下段)에서 상단(上段)으로 뛰어 올라가는 약진(躍進)이 있고 여무는 때에는 반드시 외향(外向)이 내향(內向)으로 되어 광명(光明)을 갈무리하는 변화(變化)가 있고 한 까닭이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