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의 존재(存在)하는 원리(原理)

第三章 신(神)과 인간(人間)

第一節 인간(人間)은 신(神)의 창조(創造)

■ 신(神)의 존재(存在)하는 원리(原理)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이 생(生)하는데,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에는 생(生)하고 멸(滅)함이 있으되 그 생멸(生滅)의 속에는 또한 생멸(生滅)의 없는 장존(長存)하는 것이 있으니, 초목(草木)의 예(例)로써 보면 씨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가 맺히고 하면 싹이나 줄기나 열매는 생멸(生滅)이 있으되 그 씨의 속에 있는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작용(作用)은 영원(永遠)히 멸(滅)치 아니하여, 지금의 초목(草木)의 씨는 몇 억천만년(億千萬年) 전(前)의 우주창생시(宇宙創生時)에 발생(發生)한 씨가 전래(傳來)한 것이니, 이 형질(形質)의 생(生)하고 멸(滅)하고 하는 것은 생명(生命)의 작용(作用)이오 영원(永遠)히 멸(滅)치 아니하는 것은 신(神)의 작용(作用)이다. 이제 이 우주간(宇宙間)에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고 있는 신(神)의 계시다는 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첫째로 사람은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속에서 출생(出生)하여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 뇌풍(雷風)의기(氣) 수화(水火)의정(精)으로써 구성(構成)되고, 이 생명(生命) 기정(氣精)으로써 구성(構成)된 생명체(生命體)는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천성작용(天性作用)을 가지는 것이므로 사람은 천성(天性)을 가지고 심정작용(心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며, 이 생명기정(生命氣精)은 사람만이 독특(獨特)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출생(出生)하기 이전(以前)에 천지간(天地間)에는 이미 생명기정(生命氣精)의 대자연(大自然)이 있어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천지(天地)의 체(體)와 사람의 체(體)와는 대소(大小)의 차(差)와 형태(形態)의 상이(相異)가 있을 뿐이오 그 본성(本性)은 전연(全然) 동일(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는 사람의 소자출(所自出)한 본원(本源)으로서 이미 사람의 천성(天性)과 같은 심정작용(心情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역괘(易卦)에「천지지심(天地之心)」「천지지정(天地之情)」이라 함은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의 심정작용(心情作用)을 말한 것이다.

둘째로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자신(自身)의 행동(行動)을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고 이 천성(天性)은 일신(一身)의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계획(計劃)을 세우고 있는 것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生物)이 모두 그러하여 충어(虫魚)같은 미물(微物)도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그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그보다 생리(生理)가 조금 더 복잡(複雜)한 고등동물(高等動物)은 충어(虫魚)보다 조금 더 고등(高等)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동물(動物)보다 차원(次元)의 월등(越等)한 생리(生理)를 가지고 있는 인간(人間)은 또한 그에 적응(適應)하는 월등(越等)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생물(生物)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포유(包有)하는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로 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이 곧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이라 천지(天地)는 자체(自體)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을 통일적(統一的)으로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는 것이오 이 천지(天地)의 주재(主宰)는 또한 스스로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주재(主宰)는 곧 천지(天地)의 천성(天性)으로서 천지(天地)의 창시(創始)와 함께 존재(存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사람의 출생(出生)하기 이전(以前)에 이미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어 심정작용(心情作用)으로써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한 것이오 사람의 심정작용(心情作用)은 이 천지(天地)의 심정작용(心情作用)에서 품부(稟賦)된 것이다.

셋째로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은 반드시 생명(生命)과 정신(精神)과의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써 구성(構成)되어 동일체내(同一體內)에서 운동(運動)하는 힘이 곧 생명(生命)이오 운동(運動)을 일으키는 힘이 곧 정신(精神)이다. 이것을 인신(人身)의 예(例)로써 보면 생명(生命)은 무형(無形)이 유형(有形)으로 화(化)하여 생명체(生命體)가 되는 것이므로 형이하(形而下)한 기(器)가 되는 것이오 정신(精神)은 무형(無形)그대로 있어 형화(形化)치 아니하는 것이므로 형이상(形而上)한 도(道)가 되는 것이라,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반드시 그 생생(生生)에 적은(適應)하는 무형(無形)한 정신(精神)을 가지고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여 자체(自體)의 생생(生生)하기 위(爲)한 모든 언행동작(言行動作)을 주재(主宰)하고 이목구비수족등(耳目口鼻手足等) 육체(肉體)에 대(對)하여 그 임무(任務)를 명령(命令)하며, 유형(有形)한 육체(肉體)는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므로 다만 감각기관(感覺器官)에 의(依)하여 얻어진 소감(所感)을 정신(精神)에 호소(呼訴)하고 정신(精神)의 설계(設計)한 생생계획(生生計劃)에 대(對)하여 근육(筋肉)을 움직여서 그것을 실천(實踐)할 뿐이니, 그러므로 인신(人身)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자(者)는 유형(有形)한 육체(肉體)가 아니라 곧 무형(無形)하여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는 작용(作用)을 가진 정신(精神)이다. 생명(生命)과 정신(精神)과의 이(理)를 천지(天地)로써 보면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지극(至極)히 번다(繁多)하고 지극(至極)히 착잡(錯雜)하되 모두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운동(運動)으로써 공통(共通)한 법칙(法則)속에서 그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여 하나도 생생작용(生生作用)으로부터 유기(遺棄)됨이 없고 또 만물상호간(萬物相互間)에는 상호극제(相互克制)와 상호부조(相互扶助)의 두 작용(作用)이 자연(自然)스럽게 행(行)하여 모두 조화(調和)된 상태(狀態)로써 그 생생(生生)을 완수(完遂)하고 있으니, 이는 만물(萬物)이 여기저기에서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단독적(單獨的)으로 생겨서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계통(系統)의 법칙(法則)밑에서 유기적(有機的)으로 서로 관련(關聯)되고 통일(統一)되어 어느 일물(一物)도 이 유기적(有機的) 계통(系統)의 권외(圈外)에서 단독(單獨)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유기적(有機的)으로 서로 연결(連結)되어 있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통일적(統一的)으로 영속부절(永續不絶)하는 운행(運行)을 하고 있으니, 이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이 하나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음이오 건괘(乾卦)에「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하니 이에 천(天)을 통(統)하도다」함은 만물(萬物)이 건곤(乾坤)의 생명원(生命元)에서 시생(始生)하여 하나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다 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 생명체(生命體)는 이와 같이 무한대(無限大) 무궁원(無窮遠)하므로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도 또한 거기에 적응(適應)하여 무한대(無限大) 무궁원(無窮遠)하여 우주(宇宙)의 대공간(大空間)의 극점(極點)과 대시간(大時間)의 미래(未來)를 통관(通觀)하고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을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주재(主宰)하고 있는 것이니 소위(所謂) 자연법칙(自然法則)이라 함은 천지주재자(天地主宰者)의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를 말함이다.

이상(以上) 세 가지의 이(理)에 의(依)하여 천지(天地)에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오 설괘(說卦)에는「신(神)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묘(妙)하게하여 언(言)을 하는 자(者)이라」하고 계사(繫辭)에는「변화(變化)의 도(道)를이지(知)하는 자(者)가 신(神)의 소위(所爲)를이지(知)한다」하여 천지간(天地間)에 물(物)의 생생변화(生生變化)를 주재(主宰)하는 자(者)를 신(神)이라 하니,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이 곧 신(神)이다. 천지(天地) 생명체(生命體)의 정신작용(精神作用)과 천지주재(天地主宰)인 신(神)은 전연동일(全然同一)한 것으로서 이것을 자연현상(自然現象)의 면(面)으로써 볼 때에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라 하고 천지주재(天地主宰)의 면(面)으로써 볼 때에는 신(神)이라 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은 모두 신(神)의 의식적작용(意識的作用)에 의(依)하여 계획적(計劃的)으로 창조(創造)되어 생생(生生)하는 것이므로 어느 일물(一物)도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발생(發生)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지정지묘(至精至妙)한 계획(計劃)밑에서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으로 창조(創造)된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 인간(人間)도 무형(無形)한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 속에서 출생(出生)하여 신(神)의 자손(子孫)이 되고 사람의 천성(天性)도 신(神)의 작용(作用)을 품수(稟受)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신(神)은 무형(無形)하여 볼 수가 없으므로 그 유무(有無)를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이 타인(他人)을 대(對)하는 때에 그 상대인(相對人)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고 없는 것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그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줄은 우리의 체험(體驗)으로써 확적(確的)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마다 자신(自身)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으므로 타인(他人)에게도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며 이 체험(體驗)을 더 추연해석(推衍解釋)하여 보면 인간(人間)은 반드시 사람마다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고 또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은 모두 공통(共通)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사람마다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으로 우연홀연(偶然忽然)히 오다가다 얻은 것이 아니라 모두 동일(同一)한 원(源)으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임이 분명(分明)한즉 인간(人間)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원(本原)은 반드시 어느 한곳에 있는 것이오 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원(本原)은 곧 천지(天地)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인 신(神)이다. 그리고 신(神)은 무형(無形)한 까닭에 능(能)히 천지간(天地間)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창조(創造)하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천성(天性)이 무형(無形)한 까닭에 능(能)히 무한무궁(無限無窮)한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주편(周遍)하여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함과 같은 것이다.

신(神)이라 함은 천(天)의 광명(光明)이 만물(萬物)을 생(生)한다는 뜻인데 역학(易學)에는 신(神)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하고 또한 조고(祖考)라하니 상제조고(上帝祖考)는 그 명칭(名稱)은 서로 다르되 모두 신(神)을 말한 것으로서 다만 신(神)과 사람과의 대칭(對稱)을 달리한 것뿐이다. 상제(上帝)라 함은 천상(天上)에서 광명(光明)을 하수(下垂)하여 만물(萬物)을 생(生)한다는 뜻으로서 상제(上帝)와 민중(民衆)과의 상하(上下)의 분(分)을 대칭(對稱)한 것이오 조고(祖考)라 함은 만물(萬物)을 시생(始生)하는 조상부모(祖上父母)라는 뜻으로서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자손(子孫)과의 계통(系統)의 서(序)를 대칭(對稱)한 것이다.

신(神)은 만물(萬物)의 상제(上帝) 조상(祖上)으로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신 것인즉 신(神)은 만물(萬物) 이전(以前)에 어디에서 창조(創造)된 것인가 하면, 창조(創造)라 함은 무형(無形)에서 유형물(有形物)을 조출(造出)하는 일이니 천지태초(天地太初)의 무형중(無形中)에서 비로소 유형물(有形物)의 생(生)한 것이 곧 만물(萬物)의 창조(創造)이다. 천지간(天地間)에는 천지(天地)의 생기는 처음에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있어 무형(無形)한 중(中)에 스스로 통일적(統一的)으로 운동(運動)하여 생명(生命)이 되는 것이며, 이 생명(生命)은 형(形)이 생(生)치 아니하여 무형(無形)으로 되어 있으되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그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신(神)이 있어, 생명(生命)과 신(神)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생명(生命)과 신(神)은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고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두 작용(作用)이 되어 형이상(形而上)한 작용(作用)은 신(神)이 되고 형이하(形而下)한 작용(作用)은 생명(生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유형(有形)하기 이전(以前)에 이미 신(神)이 존재(存在)하여 유형(有形)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시니, 천지(天地)의 시(始)가 곧 신(神)의 시(始)이오 신(神)의 시(始)가 곧 만물생생(萬物生生)의 시(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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