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과 사람의 상우(相祐)

신(神)과 사람의 상우(相祐)

천지(天地)는 영원불궁(永遠不窮)히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은 신(神)을 닮아서 세세계승(世世繼承)한 연후(然後)에 생생(生生)의 임무(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이 신(神)의 법칙(法則)을 본받아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일이다. 우(祐)라함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뜻으로서 사람이 신(神)을 돕고 신(神)이 사람을 돕고 함을 우(祐)라 하는 것이니, 계사(繫辭)에「가(可)히 더불어 신(神)을 우(祐)한다」함은 사람이 신(神)을 우(祐)함을 말함이오 대유괘(大有卦)에「천(天)으로부터 우(祐)한다」함은 신(神)이 사람을 우(祐)함을 말함이다. 사람이 신(神)을 우(祐)한다 함은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함이오 신(神)의 사업(事業)이라 함은 신(神)이 천지(天地)의 영원(永遠)한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여 사람으로 더불어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는 것이 곧 신(神)의 사업(事業)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일보다 더 큰 사업(事業)이 없고 만물중(萬物中)에는 사람이 가장 영귀(靈貴)한 것이며,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은 모두 신(神)이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으로서 정치(政治) 학술(學術)같은 것도 비록 그것이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영위(營爲)되고 있으되 그 사업(事業)은 신(神)의 계획(計劃)에 의(依)한 사업(事業)으로서 사람들이 신(神)의 뜻을 받들어서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의(自由意志)가 있어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할 수도 있고 또 해(害)할 수도 있는지라, 사람이 신(神)의 뜻을 받들어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은 천(天)을 순(順)하는 것이오 천(天)을 순(順)하는 자(者)는 천(天)의 우(祐)를 받는 것이며, 신(神)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불선(不善)을 행(行)하여 도리어 사람의 생생(生生)을 해(害)하는 것은 천(天)을 역(逆)하는 일이오 천(天)을 역(逆)하는 자(者)는 천(天)의 우(祐)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신(神)의 자손(子孫)으로서 신(神)으로 더불어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것이니, 환(圜)함과 우(祐)함과 닮음과는 동일(同一)한 일에 대한(對)한 표현(表現)을 달리한 것으로서, 이것을 생생운동(生生運動)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환운동(圜運動)이 되고,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신(神)을 닮음이 되고,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신(神)을 우(祐)함이 되는 것이다. 건문언(乾文言)에「대인(大人)은 귀신(鬼神)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合)한다」하니 이는 대인(大人)이 길(吉)하다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길(吉)하다하고 대인(大人)이 흉(凶)하다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흉(凶)하다 한다는 뜻으로서 대인(大人)이 신(神)을 닮아서 그 천성(天性)에 신작용(神作用)이 있으므로 대인(大人)과 귀신(鬼神)이 완전(完全)히 합치(合致)한다 함이다.

사람은 그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쓰고 있는 물자(物資)와 기구(器具)는 천연물(天然物)을 그대로 쓰는 것은 거의 없고 반드시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쓰며, 사람의 공동생활(共同生活)에 필요(必要)한 모든 제도(制度)는 천연물(天然物)로는 전연(全然) 존재(存在)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사람이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본받아서 새로 제정(制定)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천지(天地)의 미성(未成)한 천공(天工)을 대행(代行)하고 천공(天工)은 사람을 대(待)하여 완성(完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사(繫辭)에는 천지인(天地人)을 삼재(三才)라하니 재(才)라함은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재능(才能)을 말함이라, 천(天)은 만물(萬物)의 씨를 창생(創生)하여 지(地)에 시(施)하고 지(地)는 천(天)의 하시(下施)한 씨를 승수(承受)하여 형질(形質)을 창생創生하고 사람은 천연물(天然物)에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그 소용(所用)하는 물자(物資)를 생산(生産)하니 이는 천지인(天地人)이 모두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재능(才能)이 있으므로 이것을 삼재(三才)라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지상(地上)에는 천지(天地)가 창생(創生)한 천연물(天然物)과 사람이 가공(加工)한 인공물(人工物)이 전역(全域)을 차지하고 그 이외(以外)에는 조류(鳥類)의 소(巢) 봉의(蜂蟻)의 집 거미의 그물 같은 것이 있을 뿐이며, 사람이 삼재(三才)의 위(位)에 있는 것이 곧 천지(天地)로 더불어 환행(圜行)하는 지위(地位)에 있는 소이(所以)이다.

인공물(人工物)의 창제(創製)와 제도(制度)의 제정(制定)같은 것은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이오 시간(時間)의 운행(運行)에도 또한 천공(天工)과 인공(人工)과의 관계(關係)가 있으니, 이는 곧 사람이 천시(天時)를 순(順)하는 일이다. 천시(天時)라 함은 일년(一年)의 사시(四時)나 생장성(生長成)의 시운(時運)과 같은 것이니, 예(例)컨대 봄이 오면 만물(萬物)은 발생(發生)하는 것이로되 백곡(百穀)같은 것은 인공(人工)으로써 토양(土壤)을 경기(耕起)하고 씨를 심은 연후(然後)에 그 발육(發育)이 정상(正常)한 것이오 가을이 되면 백곡(百穀)은 성숙(成熟)하는 것이로되 여름에 인공(人工)으로써 배양(培養)한 연후(然後)에 가을의 결실(結實)이 완전(完全)한 것이니, 이가 인공(人工)으로써 천시(天時)를 순(順)함이다. 천지(天地)의 시(時)의 변화(變化)에는 시운(時運)이 있는데, 시운(時運)이 변(變)할 때마다 사람은 그 시운(時運)에 맞춰서 제도(制度)를 새로 만들고 생활양식(生活樣式)을 변개(變改)한 연후(然後)에 각기(各其) 적의(適宜)함을 득(得)하는 것이니, 생(生)의 시운(時運)인 원시사회(原始社會)의 인간(人間生活)과 지금의 장(長)의 시운(時運)의 인간생활(人間生活)의 상이(相異)한 것은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시운(時運)이 변(變)할 때마다 반드시 선각자(先覺者)가 나와서 새 시운(時運)에 맞는 새 생활(生活)을 지도(指導) 하는 것이니, 이는 비록 봄이 되어도 인공(人工)으로써 백곡(百穀)을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완전(完全)한 결실(結實)을 얻을 수 없음과 같이 비록 시운(時運)의 변(變)하는 때라 하더라도 사람이 인공(人工)으로써 그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행(行)치 아니하면 그 시운(時運)에 맞는 천우(天祐)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시운(時運)의 변화(變化)는 천공(天工)이오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것은 인공(人工)이니 시운(時運)의 변화(變化)하는 때에 선각자(先覺者)가 나와서 다음 시운(時運)을 예견(豫見)하고 그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인공(人工)으로써 창설(創設)하는 것이 또한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삼재(三才)의 일이며 시운(時運)의 변(變)하는 때가 오면 천공(天工)은 또한 반드시 인공(人工)으로써 천공(天工)을 대성(代成)할 수 있는 선각자(先覺者)를 이 세상(世上)에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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