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動植物)과 사람의 차이(差異)

 

동식물(動植物)과 사람의 차이(差異)

동물(動物)에도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동물(動物)의 정신(精神)은 신(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과 동물(動物)은 모두 그 씨의 발생당시(發生當時)에 이미 그 체(體)의 조직(組織)이 전연(全然) 상이(相異)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물(生物)의 조직(組織)은 모두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는데, 사람의 체(體)는 수화(水火)의 조화(調和)된 태궁(胎宮)에서 태육(胎育)되므로 한열(寒熱)이 조절(調節)되어 두부(頭部)는 한(寒)하고 한(寒)한 부분(部分)에는 털이 생(生)하며, 얼굴이나 몸같은 것은 수화(水火)의 팽탕작용(烹湯作用)에 의(依)하여 열(熱)하고 열(熱)한 부분(部分)에는 털이 생(生)치 아니하여 혁(革)이 되는 것이니, 태궁(胎宮) 혁괘(革卦)의「수화상식(水火相息)」과「혁면(革面)」은 이 뜻을 말한 것으로서, 수화상식(水火相息)이라 함은 팽탕작용(烹湯作用)이 행(行)함이오 혁면(革面)이라 함은 동물(動物)의 면상(面上)에는 털이 있어 모피(毛皮)가 되고 사람의 면상(面上)에는 털이 없어서 혁(革)이 된다 함이다. 사람은 몸에 양기(陽氣)가 성(盛)하여 화기(火氣)가 염상(炎上)하므로 신체(身體)는 화(火)의 염상체(炎上體)와 같이 삼각형(三角形)으로 직립(直立)하여 천지(天地)를 관통(貫通)하고 천성(天性)이 또한 화염체(火炎體)로 되어 두뇌(頭腦)에 의부(依附)하여 천(天)을 향(向)하며 천성(天性)은 수화(水火)가 조화(調和)되어 수(水)는 투명(透明)하고 화(火)는 광명(光明)하므로 투명작용(透明作用)과 광명작용(光明作用)으로써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하여 신작용(神作用)이 행(行)하며 화(火)의 양기(陽氣)의 발양작용(發揚作用)으로 인(因)하여 언어(言語)를 발선(發宣)하며, 신체(身體)가 직립(直立)한 까닭에 수지(手指)를 써서 기물(器物)을 공작(工作)하며, 언어(言語)와 수공(手工)이 있는 까닭에 문자(文字)를 발명(發明)하여 사부(師傅)의 교(敎)가 행(行)하니, 사부(師傅)의 교(敎)는 신도(神道)이라 사람이 신도(神道)를 행(行)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소이(所以)이다. 동물(動物)은 그 씨의 발생(發生)하는 때에 이미 수기(水氣)가 승(勝)하고 화기(火氣)가 적어서 염상(火炎)과 같은 염상체(炎上體)가 되지 못하므로 그 태궁(胎宮)에 수화(水火)의 팽탕작용(烹湯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소위 고등동물(高等動物)들도 얼굴이나 전신(全身)에 털이 생(生)하여 모피(毛皮)에 싸여 있으며 수(水)의 형(形)은 수평(水平)으로 되어 지면(地面)을 횡평(橫平)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수기(水氣)가 승(勝)하고 있는 동물(動物)의 체(體)는 모두 횡평(橫平)하여 배(背)를 하늘로 하고 복(腹)을 땅으로 하여 천지(天地)를 직립(直立).치 못하며 사람은 그 체(體)가 직립(直立)하므로 그 가족계통(家族系統)도 위의 조상부모(祖上父母)로부터 아래의 자손(子孫)에 이름과 같은 종계(縱系)와 부부(夫婦) 형제(兄弟)와 같은 횡계(橫系)와의 양계(兩系)가 동거(同居)하여 수화(水火)의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는데, 동물(動物)은 그 체(體)가 횡평(平橫)하므로 그 새끼를 유양(乳養)하는 기간(期間) 이외(以外)에는 종계족속(縱系族屬)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자웅상종(雌雄相從)하는 횡계(橫系)만이 있는 것이오, 사람이 천지(天地)의 신(神)을 조고(祖考)로 모시는 것도 또한 종계(縱系)의 이(理)에 이(依)한 것이다. 동물(動物)은 화기(火氣)가 부족(不足)하여 화(火)의 광명(光明)이 약(弱)하므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어두우며, 양기(陽氣)가 적어서 발선(發宣)하는 힘이 없으므로 언어(言語)를 발(發)치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식물(食物)은 대개(大槪) 수화(水火)로써 가공(加工)하여 그 정(精)을 섭취(攝取)하고, 음용수(飮用水)는 도처(到處)에 있는 것이로되 오직 생명체(生命體)인 토중(土中)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생명수(生命水)로 되어 물의 최정(最精)한 것이므로 음용수(飮用水)는 정천(井泉)을 파서 마시는 것인데, 동물(動物)의 식료(食料)는 수토(水土)에서 생(生)하는 천연물(天然物)을 가공(加工)함이 없이 그대로 조식(粗食)하고 있으니, 동물(動物)은 화기(火氣)가 적어서 광명(光明)치 못하고 수기(水氣)가 비록 승(勝)하되 수(水)가 탁(濁)하여 투명(透明)치 못하고 한 까닭에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어둡고 탁(濁)하여 신(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天地)는 영원불궁(永遠不窮)한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생생(生生)을 세세계승(世世繼承)하기 위(爲)하여 먼저 식물(植物)을 생(生)하고 그 식물(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여 한 차원(次元)의 높은 동물(動物)을 생(生)하고, 다시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여 더 한 차원(次元)의 높은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의 천성(天性)으로 하여금 신(神)을 닮게 하여 신과(神)과 사람이 함께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것이 천지(天地)가 사람을 생(生)한 소이(所以)이오, 사람은 천지(天地)의 영원(永遠)한 생생작용(生生作用)의 일역(一役)을 맡기 위(爲)하여 이 세상(世上)에 출생(出生)한 것이다. 동물(動物)이 식물(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하고 사람이 동식물(動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하는 것은 만물(萬物)의 자라는 때에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작용(作用)을 아울러 행(行)하는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니 이는 동물(動物)과 식물(植物)은 양기(陽氣)가 부족(不足)하고 형질(形質)이 승(勝)하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신(神)을 닮지못하는 것이므로 식물(植物)은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희생(犧牲)하여 신(神)에게 바쳐서 윗 차원(次元)의 동물(動物)의 형(形質)로 화(化)하고, 동물(動物)이 또한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희생(犧牲)하여 신(神)에게 바쳐서 윗 차원(次元)의 사람의 형질(形質)로 화(化)하는 것으로서 모든 생물(生物)이 일련(一聯)이 되어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으로써 신(神)을 닮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운동(運動)이다.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의 일련(一聯)의 관계(關係)는 천지(天地)의 창조(創造)될때에 이미 정(定)하여진 것이니, 이것을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으로써 보건대, 신(神)이 처음으로 생물(生物)을 창조(創造)할 때에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인 형질(形質)을 먼저 만들고 순전(純全)히 신(神)의 뜻인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게 하고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주지 아니하니, 이는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이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으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겨서 스스로 자체(自體)의 조직(組織)을 파괴(破壞)하는 일이 있는 까닭이오,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은「생(生)」의 상(象)인데, 기본조직(基本組織)을 파괴(破壞)하는 것은 곧 자체(自體)의 생(生)을 파괴(破壞)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에는 자유(自由)가 없고 오직 자연법(自然法則)을 순종(順從)할뿐이며, 이것이 최초(最初)로 창조(創造)된 식물(植物)이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모두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양상(兩象)이 있는데 식물(植物)은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으므로 그 운행(運行)이라고는 토중(土中)에 착근(着根)하여 주위(周圍)에 있는 영양(營養)을 취(取)하고 타력(他力)에 의(依)하여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하는등(等)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영위(營爲)할뿐이니 이는 물(物)이 다만 조직체(組織體)를 가지고 살고만 있는 생(生)의 상(象)으로써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기는 일이 없이 신(神)의 뜻을 순종(順從)하고 있으나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는 까닭에 또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작용(作用)도 없는 것이다. 식물(植物)에는 초목(草木)의 수다(數多)한 종류(種類)가 있어 그 수(數)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번잡(繁雜)하니, 이는 식물(植物)이 각기(各其) 신(神)의 체(體)의 작용(作用)을 일부분(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개체(個體)를 삼는 까닭에 신(神)의 체(體)의 전체(全體)가 모두 부분(部分)으로 나뉘어서 수다(數多)한 식물종류(植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의 작용(作用)을 하나로 종합(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신(神)의 체(體)의 전체작용(全體作用)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는 곧 신(神)의 체(體)의 전체(全體)로서 지상(地上)의 모든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이 되는 것이다.

식물(植物)의 다음에는 식물(植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인 형질(形質)을 바탕으로 하여 그 형질(形質)에는 역시(亦是) 조직(組織)을 변개(變改)할만한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고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生)하고 자라고 노(老)하고 죽고하면서 다만 그 형질(形質)을 움직여서 생육(生育) 생식(生殖) 장수(長壽)의 세 본능(本能)을 수행(遂行)할 수 있는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는 한 생물(生物)이 창조(創造)되니, 이가 곧 동물(動物)이다. 그러므로 동물(動物)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 그 체(體)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응(順應)하고 거기에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수행(遂行)할 수 있는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본능생활(本能生活)의 자유(自由)는 생물(生物)이 자라기 위(爲)하여는 가장 기본(基本)되는 자유(自由)인데, 동물(動物)은「장(長)」의 상(象)이되므로 자라는 동안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영위(營爲)하기 위(爲)하여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있는 것이다. 다만 동물(動物)에는 천성중(天性中)의 본능(本能)인 정(情)만 있고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이 없으므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작용(作用)이 없으며, 동물(動物)에도 수다(數多)한 종류(種類)가 있는 것은 동물(動物)이 각기(各其) 신(神)의 정(情)의 일부분(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본능(本能)을 삼는 까닭에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가 나뉘어서 수다(數多)한 동물종류(動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동물(動物)의 전종류(全種類)의 본능(本能)을 하나로 종합(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動物)의 전종류(全種類)의 본능(本能)은 곧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로서 이것이 모든 생물(生物)의 본능(本能)의 원(源)이 되는 것이다.

동물(動物)의 다음에는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생(生)」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고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자라는 작용(作用)」으로하여 자유(自由)로이 행동(行動)하고 그 위에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기 위(爲)하여 그 형상(形象)은 신(神)의 형상(形象)을 닮고 언어(言語)의 자유(自由)를 가지는 한 생물(生物)이 창조(創造)되니, 이가 곧 사람이다. 사람은 천지유일신(天地唯一神)의 형상(形像)대로 되어 있으므로 세계인류(世界人類)가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고 언어(言語)는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을 가진 자(者)만이 사용(使用)할 수 있는 것인데, 설괘(說卦)에「신(神)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묘(妙)하게하고 언(言)을 하는 자(者)이라」하여 신(神)이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고 사람에게 언어(言語)를 주어 서로 수작(酬酌)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사람은「성(成)」의 상(象)으로서 식물(植物)의 형질(形質)과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 합(合)하고 또 신(神)의 언어(言語)를 배워서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을 행(行)한다 함이며, 사람이 언어(言語)를 통(通)하여 신(神)으로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 있는 것이 곧 능(能)히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소이(所以)이다.

세인중(世人中)에는 흔히 사람을 동물(動物)의 일종류(一種類)로 보는 일도 있으나 사람과 동물(動物)은 그 생생(生生)하는 차원(次元)이 전연(全然)다르다. 사람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로써 육체(肉體)의 조직(組織)을 삼고 그것이「생(生)」의 상(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육체(肉體)는 식물(植物)과 같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장노사(生長老死)하고 있으니, 인체중(人體中)에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종(順從)하는 것은 오직 이 육체(肉體)이며, 인체(人體)가 식물(植物)의 요소(要素)를 가지고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식물(植物)을 취(取)하여 자체생양(自體生養)의 자료(資料)를 삼는 것이며, 사람은 동물(動物)의 자유행동(自由行動)하는 본능(本能)으로써 생활(生活)의 본능(本能)을 삼고 그것이「장(長)」의 상(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육체(肉體)는 동물(動物)과 같이 본능(本能)을 따라서 행동(行動)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인간(人間)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은 모두 동물적(動物的)이며, 인체(人體)가 동물(動物)의 요소(要素)를 가지고 본능생활(本能生活)을하여 자라고 있으므로 동물(動物)을 취(取)하여 자체생양(自體生養)의 자료(資料)를 삼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生活)이 본능생활(本能生活)에 그친다고 하면 이는 동물(動物)과 별(別)로 차별(差別)이 없다고 할 것이나 사람은 그 형상(形像)이 신(神)을 닮고 언어(言語)를 통(通)하여 신(神)으로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가 있으므로 사람의 육체중(肉體中)에 동물(動物)의 요소(要素)가 들어 있을 뿐이오 동물(動物)의 일종류(一種類)는 아니다. 사람과 동물(動物)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상(象)을 비교(比較)하여 보더라도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에 양수(陽數)의 종(終)인 구수(九數)는 자라는 극수(極數)가되고 음수(陰數)의 종(終)인 십수(十數)는 여무는 극수(極數)가 되는데, 사람은 남체(男體)는 구규(九竅)가 열리고 여체(女體)는 십규(十竅)가 열려서 음양장성(陰陽長成)의 극수(極數)를 가지고, 남녀(男女)가 모두 여체(女體)의 십규(十竅)에서 구합삭(九合朔)을 지낸 십삭(十朔)만에 출생(出生)하므로 자연수(自然數) 오십오(五十五)가 구전(具全)하여 음양(陰陽)이 조절(調節)되고 신(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며, 동물(動物)은 비록 고등동물(高等動物)이라 하더라도 구규(九竅)만이 열리고 십규(十竅)가 되지 못하므로 육체(肉體)만 자라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동물(動物)보다. 한 차원(次元) 높은 위(位)에 있는 소이(所以)이며, 이 까닭에 동물(動物)은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자료(資料)가 되는 것이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한 차원(次元) 높은 사람의 형질(形質)로 화(化)하여 신(神)에게로 한 차원(次元) 접근(接近)하는 소이(所以)이다. 신(神)은 사람으로 더불어 환행(圜行)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을 기르기 위(爲)하여 동식물(動植物)을 희생(犧牲)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을 닮는 수양(修養)을 쌓은 연후(然後)에,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고 있는 동식물(動植物)에 대(對)하여 그 은덕(恩德)을 보답(報答)함이 되는 것이오, 만일 사람이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지 못하고 한갓 자기 육체(肉體)가 살찌기 위(爲)하여 다른 생물(生物)만을 희생(犧牲)하여 없애면 이는 무고살생(無故殺生)이 되어 천지생생(天地生生)의 대덕(大德)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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