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天命)은 일생(一生)의 사명(使命)

 

천명(天命)은 일생(一生)의 사명(使命)

사람에게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기고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일이 있으므로 사람은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함에 필요(必要)한 천성(天性)을 천(天)으로부터 품수(稟受)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세상(世上)에 출생(出生)하여 어떠한 일을 한다는 사명(使命)을 천(天)으로부터 아울러 품수(稟受)하니, 이가 천명(天命)이오, 건괘(乾卦)에 「건도(乾道)가 변화(變化)하여 각각(各各) 성명(性命)을 정(正)한다」함은 물(物)이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을 바르게 행(行)한다 함을 말함이다. 천성(天性)은 원심통명(圓深通明)하여 공간(空間)의 상(象)이 되고 천명(天命)은 사람의 일생(一生)동안에 수행(遂行)할 바의 사명(使命)이므로 시간(時間)의 상(象)이 되는데, 공간(空間)은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그 일부를(一部)를 변개(變改)할 수가 있으므로 천성(天性)에는 자유(自由)가 있어 능(能)히 공간(空間)의 자연물(自然物)에 대(對)하여 인공(人工)을 가(加)할 수가 있는 것이오 시간(時間)은 사람의 힘의 전연(全然) 미치지 못하는 경역(境域)이므로 스스로 기정(旣定)된 사명(使命)이 있어 사람은 천시(天時)를 봉행(奉行)하면서 그 사명(使命)을 다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여 이 세상(世上)에 생(生)한 자(者)는 반드시 천명(天命)을 받고 있는 것이니, 이는 모든 생물(生物)이 세상(世上)에 나올 때에 다만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되는대로 오다가다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신(神)의 체(體)의 일부분(一部分)을 나눠 받고 나온 까닭이다.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은 수다(數多)한 종류(種類)로 나뉘어서 생(生)하고 있는데, 이들은 형질(形質)을 주(主)로 하고 있으므로 그 소위(所謂) 천명(天命)이라는 것은 그 종류(種類)의 형질(形質)의 생생계승(生生繼承)하는 일이니 그 일례(一例)로는 양목(楊木)은 양목(楊木)으로 생(生)하여 양목(楊木)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상목(桑木)은 상목(桑木)으로 생(生)하여 상목(桑木)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우(牛)는 우(牛)로 생(生)하여 (牛)우의 씨를 보존(保存)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마(馬)는 마(馬)로 생(生)하여 마(馬)의 씨를 보존(保存)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다. 그러므로 양상우마(楊桑牛馬)는 모두 그 종류(種類)대로 공통(共通)한 개성(個性)을 가지고 동일(同一)한 임무(任務)를 수행(遂行)하여 모두 자연(自然)스럽게 그 천명(天命)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어 공동생활(共同生活)의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고 사람의 생활(生活)은 극(極)히 복잡(複雜)하여 반드시 분업협업(分業協業)이 있는 것이므로 사람은 그 종류(種類)는 단일(單一)하고 있으되 그 성격(性格) 지식(知識) 기능(技能) 같은 개성(個性)은 실로(實)로 천차만별(千差萬別)한 것이니, 사람의 개성(個性)의 천만(千萬)가지 차이(差異)는 동식물(動植物)의 천만(千萬)가지 종류(種類)의 차이(差異)와 필적(匹敵)하는 것이며,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분업협업(分業協業)으로써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기 위(爲)하여 각기(各其) 독수(獨殊)한 성격(性格) 지식(知識) 기능등(技能等) 개성(個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곧 천명(天命)이다. 사람은 독수(獨殊)한 개성(個性)을 가지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으로써 일생(一生)의 사명(使命)을 삼고 있으므로 사람은 동식물(動植物)과 같이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이 자라고 자손(子孫)을 번식(繁殖)하고 하는 것으로는 천명(天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동식물(動植物)은 수다(數多)한 종류(種類)로 나뉘어 있으므로 그 종족보존(種族保存)이 한 사명(使命)으로 되어 있으나, 사람은 세계인류(世界人類)가 모두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고 있으므로 그 종족(種族)의 보존(保存)은 천명(天命)이 되지 아니하고 인류전체(人類全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사업(事業)이 천명(天命)으로 되는 까닭이며,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그 사명(使命)을 다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순(順)함이되고 사명(使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역(逆)함이 되는 것이다.

천명(天命)인 사명(使命)은 사람의 일생(一生)동안에 수행(遂行)하는 일이므로 어느 일면(一面)으로는 운명(運命)도 되는 것이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양상우마(楊桑牛馬)는 일생(一生)을 양상우마(楊桑牛馬)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완전(完全)히 운명(運命)으로 되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면(面)으로 볼 때에는 사람의 천명(天命)도 또한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오, 또 사람의 살고 있는 시운(時運)도 시간(時間)에 속(屬)하여 있으므로 또한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니, 사람은 시간(時運)이라는 운명(運命)의 속에서 살면서 그 품수(稟受)한 바의 사명(使命)을 다하고 있으므로 그 일생(一生)의 활동(活動)은 스스로 운명(運命)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時間)속의 인간(人間)의 실생활(實生活)은 공간(空間)에 속(屬)하니,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은 인공(人工)으로써 선(善)하게 할 수도 있고 악(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비록 어떠한 시운(時運)이 도래(到來)하더라도 사람은 그 시운(時運)에만 의존(依存)하는 것이 아니오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은 최선(最善)의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인간생활(人間生活)에 이용(利用)하고 인공(人工)으로써 할 수 있는 인사(人事)를 다한 연후(然後)에 시운(時運)을 대(待)하는 것이 곧 천명(天命)을 순(順)함이다.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은 하나는 자유(自由)이오 하나는 운명(運命)으로서 서로 대립(對立)하고 있는듯하나, 두가지가 모두 천(天)으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으로서 그 본원(本源)이 동일(同一)하므로 사람은 그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천성(天性)의 지선(至善)을 다하고 천명(天命)을 순(順)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때에 천성(天性)의 자유(自由)와 천명(天命)의 운명(運命)이 스스로 일치(一致)하는 것이니, 설괘(說卦)에「이(理)를 궁(窮)하고 성(性)을 진(盡)하여 써 명(命)에 지(至)한다」함은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의 일치(一致)한 경지(境地)를 말함이오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의 일치(一致)한 자(者)는 천성(天性)의 여문 자(者)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自身)의 품수(稟受)한 천명(天命)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고,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고서 자기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난 사명(使命)을 다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비록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고 있으되 인간(人間)으로 신(神)을 우(祐)하는 일을 행(行)하면 또한 스스로 사명(使命)을 다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이는 인류(人類)의 공동생활(共同生活)에는 여러 가지의 분업협업(分業協業)이 있으되 그 귀착(歸着)하는 곳은 모두 신(神)을 우(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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