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의 원리(原理)

충(忠)의 원리(原理)

충(忠)은 사람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심(心)의 체(體)인 덕(德)을 광명(光明)케하여 자체(自體)가 소속(所屬)하여 있는 사회(社會)의 생생(生生)을 돕고 사업事業을 수(修)하는 것이 곧 충(忠)이다.

 

註 ●충(忠)의 이(理)

건문언(乾文言)에「충(忠)과 신(信)이 써 덕(德)을 진(進)하는 바이라」한바 덕(德)이라 함은 사람이 물(物)을 생양(生養)하는 마음의 체(體)를 말함이니, 충(忠)은 중심(中心)으로부터 물(物)을 애육(愛育)하는 마음이 솟아나옴을 말함이오 마음이 충(忠)하면 능(能)히 물(物)을 생양(生養)한다 함이다.

사람은 국가사회(國家社會)의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그 공동체(共同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중심(中心)에서 나오는 공동생활(共同生活) 정신(精神)이 곧 충(忠)이다. 사람은 그 사회(社會)에 출생(出生)하는 날에 스스로 그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일원(一員)이 되어,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이 곧 자신(自身)의 생생(生生)과 직결(直結)되는 것이므로 국민(國民)은 국가(國家)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충(忠)하는 것이 곧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각기직무(各其職務)를 통(通)하여 자기(自己)를 이(利)하고 아울러 사회(社會)를 이(利)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일에 참여(參與)하는 것은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충(忠)이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여 신(神)에 대(對)한 충(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生活)에는 형질(形質)로된 육체(肉體)의 생활(生活)과 천성작용(天性作用)인 정신(精神)의 생활(生活)과의 이원작용(二元作用)이 있는데, 육체(肉體)는 유형(有形)한 개체(個體)로 되어 개개인(個個人)의 독자(獨自)한 것이므로 육체생활(肉體生活)은 개체(個體)를 중심(中心)으로하여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본능생활(本能生活)이오 정신(精神)은 무형(無形)한 기(氣)로서 인류공통(人類共通)한 것이므로 정신생활(精神生活)은 전인류(全人類)의 소자출(所自出)한 신(神)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이성생활(理性生活)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은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하여 생활(生活)하고 있으므로 조상부모(祖上父母)에 대(對)한 효(孝)가 또한 신(神)에 대(對)한 효(孝)가되고 국가사회(國家社會)에 대한 충(忠)이 또한 신(神)에 대(對)한 충(忠)이 되는 것이며 동일(同一)히 신(神)을 우(祐)하는 일에 효(孝)와 충(忠)의 분별(分別)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이것을 계계생생(繼繼生生)하는 조손전승관계(祖孫傳承關係)로써 볼 때에는 효(孝)가되고 공동생활(共同生活)하는 상하조직관계(上下組織關係)로써 볼 때에는 충(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생(生)」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고,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자라는 작용(作用)」으로하여 자유(自由)로이 행동(行動)하며, 또 이들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생활자료(生活資料)로 하여 생생(生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이 식물동물(植物動物)과 동일(同一)하고 사람의 충효(忠孝)의 이(理)도 또한 식물동물(植物動物)의 생리(生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초목(草木)이 뿌리로부터 점차(漸次)로 생장(生長)하여 본말(本末)의 차서(次序)가 있는 것은 사람이 조상(祖上)으로부터 대대(代代)로 계승(繼承)하는 형태(形態)와 같고 초목(草木)의 생장(生長)에 절(節)이 있는 것은 사람의 조손전승(祖孫傳承)하는 촌수(寸數)의 형태(形態)와 같으니 근본(根本)은 조상부모(祖上父母)의 상(象)이오 지엽(枝葉)은 자손(子孫)의 상(象)이라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은 그 소자출(所自出)한 근본(根本)을 비호(庇護)하기 위(爲)하여 지엽(枝葉)을 뿌리의 신장(伸張)한 범위(範圍)만치 신장(伸張)시켜 뿌리가 일광(日光)에 건조(乾燥)됨을 방지(防止)하고 뿌리는 수분(水分)과 영양(營養)을 흡수(吸收)하여 지엽(枝葉)에 전달(傳達)하여 근본(根本)과 지엽(枝葉)이 모두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서로 비호(庇護)하고 서로 양육(養育)하니 이는 사람의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자손(子孫)이 서로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천명(天命)의 줄을 연계(連繼)함과 같은 것이며,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그 근본(根本)을 위(爲)하는 것은 효(孝)의 상(象)이 되므로 사람이 조상부모(祖上父母)를 위(爲)하는 효(孝)는 초목(草木)의 효(孝)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은 순차적(順次的)으로 생장분기(生長分岐)하는 초목(草木)과는 달라서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통체(統體)가 이미 조직(組織)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출생(出生)하면서 스스로 그 소속(所屬)한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일원(一員)이 됨과 같고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이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공동(共同)으로 그 통체(統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는 것은 사람이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그 소속(所屬)한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을 돕고 있음과 같은 것이며,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이 그 통체(統體)를 위(爲)하는 것은 충(忠)의 상(象)이 되므로 사람이 국가사회(國家社會)를 위(爲)하는 충(忠)은 동물체(動物體)의 충(忠)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의 생생(生生)은 모두 효충(孝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서괘(序卦)에「유부부연후유부자(有夫婦然後有父子) 유부자연후유군신(有父子然後有君臣) 유군신연후유상하(有君臣然後有上下) 유상하연후예의유소착(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이라 하니 부자(父子)는 식물체(植物體)의 상(象)이오 군신(君臣)의 권력조직(權力組織)인 국가도(國家道)는 동물체(動物體)의 상(象)이오 상하도(上下道)는 자연질서(自然秩序)인 예의(禮義)의 착(錯)하는 인도(人道)의 상(象)이니, 이는 식물(植物)이 있은 연후(然後)에 동물(動物)이 있고 동물(動物)이 있은 연후(然後)에 사람이 있다하는 상(象)이다. 부자도(父子道)는 부모(父母)가 전력(全力)을 다하여 자녀(子女)를 생양(生養)하여 국가사회(國家社會)에 바치는 것으로서 이는 식물(植物)이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동물체(動物體)를 생양(生養)하는 상(象)이오 국가도(國家道)는 국가(國家)가 전력(全力)을 다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여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동물(動物)이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식물동물(植物動物)의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부모(父母) 국가(國家)의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행위(行爲)와 상통(相通)하는 것이오 이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이 곧 효충(孝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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