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인간은 자라는과정에있는 미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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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人間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未成品

사람의 天性은 善한 것인데 지금에 人間社會에서 惡이 자주 發生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天性이 善하다 함은 天性의 여문 것을 말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過程에는 아직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온전한 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過程에 있는 사람은 하나의 未成品으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에 當하여 사람들이 모두 未成品으로 되어있어, 사람들의 天性이 또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善이 되지 못하고 惡이 發生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모든 生物은 個體를 가지고 生育하는 本能이 있으므로 個體의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制하는 것이오 特히 長의 時運中에 있어서는 그 生長競爭의 結果가 惡에 까지 發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樹木의 例로써 보건대 樹木은 아무 意識이 없으되 또한 生長競爭作用을 가지고 서로 排斥하면서 自體의 生長을 期하고 將且 열매를 맺고 여물어서 世世繼承하여 永遠不窮히 生生하려 하는 것이며, 만일 生長競爭에 敗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世世繼承의 作用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樹木은 열매를 맺기 爲하여 生長競爭을 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樹木에는 自由意志가 없고 全혀 自然法則을 順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없으므로 惡은 發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動物같은 것은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고 있으나 그 것은 相互間의 衝突에 不過하고 意識的 計劃的으로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은 生長競爭을 行하는 때에 意識的 計劃的으로 他를 克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있으므로 生長競爭의 激甚한 長의 時運에 惡이 發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惡의 生하는 것을 人體의 組織으로써 보건대 사람의 精神과 肉體는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精神에는 神作用이 있어 萬人公共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理性이 있고 惡이 없으며, 肉體는 個人마다 各各 私有한 個體로서 거기에는 本能의 感情이 있고 感情에는 彼我의 區別이 强하고 個體의 私가 生하는 까닭에 흔히 理性이 밝지 못하고 和氣를 傷하여 惡이 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善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되고 惡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消滅하는 것인데, 惡이 쭉정이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神은 사람의 自由로운 生生을 爲하여 또 自由로이 자라게 하기 爲하여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 사람에게 自由意志를 賦與하고 사람은 自由意志에 依하여 모든 所願을 成就하는 것이므로 神은 사람이 自由意志를 行使하는 동안은 善惡間에 사람의 行爲를 그대로 許하고 사람의 所願하는대로 따라가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自由意志가 있은 然後에 充分히 자랄 수 있는 까닭이며, 사람의 言行은 天地圜行의 理에 의하여 善惡間에 모두 神에게로 올라가고 神은 그것을 받으시는 대로 모두 그 사람에게 돌려주시어 그 사람의 所願을 成就시키시는 것이다. 卽 사람은 善을 行하면 善이 쌓여서 자라고 惡을 行하면 惡이 쌓여서 자라는 것이며, 善의 자란 것은 열매가 여물어서 永遠한 씨가 되는 것이오 惡의 자란 것은 쭉정이가 되어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사람이 善을 行하는 者는 열매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오 惡을 行하는 者는 쭉정이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라, 自身의 自由意志로써 善惡을 行하여 열매가되고 쭉정이가 되고 하는 것은 모두 그 所願을 成就하는 일이다.

坤卦에「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이라 하니 이는 사람이 自由意志로써 善惡을 積하여 그 所願하는 慶殃을 받음을 말함이며, 여기에도 또한 圜運動의 象이 있으니, 自家에서 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善의 應報가 돌아오고, 自家에서 不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不善의 應報가 돌아오는 것인데, 自家에서 나가서 自家에 돌아오는 것은 空間的 圜運動이오, 지금에 나가서 後日에 돌아오는 것은 時間的 圜運動이다. 여름에 草木의 자랄 때에는 어느 열매가 알맹이로 되고 어느 열매가 쭉정이로 되고 할 것을 分別할 수가 없는 것이나, 가을이 되면 알맹이와 쭉정이가 스스로 選別되어 알맹이만 남고 쭉정이는 消滅되는 것이니, 이는 天地의 生生法則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라는 때에 自由意志의 길을 바르게 向하여 充實히 자라면 알맹이가 또한 充實히 여무는 것이오 充實히 자라지 못하면 비록 成의 時運이 到來하더라도 充實한 알맹이가 되지 못하는 것이며, 지금의 人間은 長의 時運에 處하여 아직 여물지 못한 未成品이 되고 있으므로 惡을 行하는 일이 있어 쭉정이로 되는 者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人體로써 보면 健康은 사람의 生命을 完全히 하는 것이므로 善하여 알맹이의 象이 되고 疾病은 사람의 生을 害하여 死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惡하여 쭉정이의 象이 되는 것이다.

人間社會안에 사람의 生을 害하는 惡人이 있는 것은 사람의 身體에 疾病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身體의 疾病을 治療하여 그 生을 完全하게 하는 것은 비록 疾病治療中에 그 사람에게 苦痛을 주고 身體一部를 手術하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善이 되고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이 理에 依하여 社會안의 惡人의 自由를 拘束하고 嚴刑을 加하고 하는 것은 社會의 疾病을 治療하여 그 社會의 生을 完遂하기 爲함이니, 그러므로 이것은 善이 되고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革卦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이라 함은 天時와 人心에 順應하여 社會안의 惡政治를 除去하고 社會의 生을 完遂하는 事業을 行함을 革命이라 한 것이다. 여기에 革命이라 함은 順天應人하는 革命을 말하는 것이므로 革命은 善한 것이며, 長의 時運에 勢力의 强弱으로써 서로 政權을 爭奪하는 것은 비록 政權을 奪取하되 그것은 社會를 生生하는 運動이 아니므로 革命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 性惡說

사람의 天性을 惡하다고하는 性惡說이 있는데, 天性은 사람의 모든 行爲를 主宰하여 人體의 健康함과 같은 것이므로 天性은 반드시 善한 것이며, 저 所謂 性惡說은 마치 世間에 疾病에 걸린 사람이 많음을 보고 사람의 몸은 疾病으로서 組織되었다 함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몸은 健康으로서 組織되고 疾病 같은 것은 一時的 不健康 現象에 不過한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은 善한 것이오 저 惡같은 것은 生長競爭의 過程에서 天性이 疾病에 걸려서 一時的으로 發生하는 것이오 天性에는 惡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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