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이 모두 자유 (자유의지와 선악)

 

第二節 自由意志와 善惡

■ 善惡이 모두 自由

사람의 天性이 發用함에는 自由가 있어 그것이 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은 各其 居住를 달리하고 그 居住하는 곳의 地宜 氣候 食物等이 同一치 아니하므로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自體의 生生을 適宜히 裁成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또 사람은 神을 祐하여 모든 生活資料를 生産하고 共同生活에 必要한 制度를 만들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고 함에는 그 計劃을 세우고 才能을 發揮하여 人工을 行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는 그 出生하는 때에 天地로부터 稟受한 天賦의 自由이니 繫辭에「天下가 무엇을 思하며 무엇을 慮하리오 天下가 同歸하되 길은 다르고 一致하되 慮는 百이라」하니 同歸一致라함은 神에게로 歸一함을 말함이오 길이 다르고 慮가 百이라 함은 各自의 天性에 自由가 있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天性의 自由는 自體가 生生하고 또 사람을 生養하기 爲하여 天으로부터 받은 바의 自由로서 이것은 神을 祐하는 自由이오 天工을 代行하는 自由이다.

사람은 自由意志와 生을 營爲하는 知能이 있고 또 사람의 天性은 善의 繼生하여 여문 것이므로 天性은 善한 것인데 사람에게 惡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먼저 善惡이라는 것을 易理로써 보면 天性은 씨의 組織과 같은 것으로서 씨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 곧 善인즉 씨가 여물지 아니하고 쭉정이로 되어 싹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善을 害함이 있는 까닭이오, 善을 害하는 것이 곧 惡이니, 이는 生生하여 發育함은 善이 되고 生生을 害하는 것은 惡이 된다함이며, 그러므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돕는 것은 善한 일이오, 生養事業을 害하는 것은 惡한 일이니, 이가 善惡을 判別하는 標準이 되는 것이다.

或은 말하기를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을 주어서 惡을 行하게하고 또 그 惡을 防止치 아니하는가 하는데, 神이 萬物을 創造하실 때에 먼저 植物을 지어서 行動의 自由와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고, 다음에 動物을 創造하심에 行動의 自由만을 주시고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며, 그 다음에 사람을 創造하심에 天地唯一神의 形像대로 짓고 神 自身이 가지고 있는 自由意志와 知能을 그대로 주시고 神의 말하는 言語를 주어서 神과 사람이 서로 酬酌하게 하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라고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도록 하시었으므로, 사람은 人工으로써 天工의 未成함을 代成하고 天性이 여물어서 神作用이 生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는 사람의 자라는 동안 아무런 制限을 받지 아니하는 天賦의 自由이다. 神과 生命은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神은 永遠한 生生을 主宰하므로 萬物의 씨를 創造하심에 모두 永遠性을 賦與하여 世世로 繼承케 하시니, 그러므로 萬物의 生長成運動에 있어서, 生의 象인 씨의 創造와 成의 象인 열매의 여무는 것은 神이 直接主宰하시고 씨에서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기까지의 形質의 자라는 동안은 有形을 主宰하는 生命體가 그 任務를 맡고 있는 것이며, 物의 有形하는 동안에는 神은 形質中에 갈무리하여 다만 그를 따라 가실 뿐이다. 이것을 사람의 生生으로써 보면 사람의 씨의 始生하는 일과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는 일은 神이 主宰하시고, 사람의 出生以後에 肉體를 生養하고 精神을 修鍊하는 等 자라는 동안의 일은 하나의 獨立된 生命體로 되어있는 사람 自身의 任務로 되는 것이다.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神의 形像대로 지은 까닭에 神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이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도 自由意志와 知能을 賦與하신것인데, 사람은 자라는 동안에 그 自由意志와 知能을 마음껏 行使하여 善할 수도 있고 惡할 수도 있으며, 神은 다만 사람의 行爲의 結果에 대하여 害福을 주실 뿐이다. 害福이라 함은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善을 行하든지 惡을 行하든지 그것은 모두 사람의 自由이오 善이 쌓이면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아 알맹이가 되고 惡이 쌓이면 天性에 神作用이 없어서 쭉정이가 되는 것이니, 이가 곧 害福이오 이것을 自然法則面으로써 보면 應報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自己의 自由意志대로 行한 行爲에 對하여 그 自身이 責任을 지는 것이다.

사람은 自身이 자라는 自由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자라게 하는 能力의 自由도 있어 能히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여무는 일은 그렇지 아니하여 自身의 여무는 것도 神의 主宰에 屬하는 것이므로 남을 여물게 할 수는 없으며, 다만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은 師傅自身의 自由能力이 아니라 聖人이 設하여 놓은 神道의 敎로써 가르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神作用에 依하여서만 天性이 여물수가 있는 것이다.

 

  • 自由의 本質

사람에게는 자라는 동안에 自由意志가 있고 또 자라는 동안에 生長競爭이 있으므로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各人으로부터 生長競爭의 自由가 發動하여 온 人類世界는 모두 競爭이오 모두 自由이니, 그러므로 이 世上에는 自己의 生存作用을 行하는것도 發揮하는것도 自由이오, 남의 生存作用을 侵害하는것도 自由이오, 勢力을 가진 者가 民衆을 抑壓하여 政權을 行使하는것도 自由이오 民衆들이 自體의 利益을 護衛하기 爲하여 政權에 對抗하는것도 自由이다. 過去의 資本主義 社會의 弱小民族侵略도 資本主義들의 自由이었고 지금의 共産主義者들이 民衆을 奴隸化하고 自體가 勞動貴族化하는 것도 共産主義者들의 自由이다. 自由라는 것은 本質이 이러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自由에 對하여 所謂 사람의 自由를 尊重하여 이러한 自由도 尊重하고, 저러한 自由도 尊重한다면, 이 世上에는 强者만이 살고 弱者는 살 수 없어서 이 世上에는 自由라는 것이 全然抹殺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自由를 行使하는 行爲에는 스스로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와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가 있고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善이 되고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는 惡이 되는 것이다.

 

  • 善惡의 標準

善惡이라는 것을 人體로써 보면 健康은 善이오 疾病은 惡이니 이는 健康은 사람을 生하게하므로 善이 되고 疾病은 사람의 生을 害하므로 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獨立한 個體로 되어 있어 그 모든 行爲는 徹頭徹尾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오, 決코 남을 爲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行爲가 어떻게 남의 生을 爲할 것인가 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에는 體와 用이 있다. 사람은 個體로 되어 있어 그 行爲는 반드시 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므로 個體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共同生活을 營爲하기로 되어 있는 까닭에 自己가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方法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卽 自己가 남을 爲하지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를 通하는 길과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로 하여금 또한 나를 爲하게 하는 共同體를 通하는 길이 있다. 自己가 남을 爲치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안에서 自己를 爲하는 사람은 自己 혼자 뿐이며,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이 또한 나를 爲하는 共同體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가 모두 나를 爲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넓은 社會가 모두 서로 爲하고 서로 돕고 하는 것이 人類社會의 本然의 姿勢이오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가 곧 自己의 生을 爲하는 行爲이며, 그러므로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用이 되는 것이다. 이 體와 用의 理를 要約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의 體는 自身이 直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오 自由行爲의 用은 남을 爲하여 間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行爲에 이 體와 用이 具備한 然後에 能히 그 生을 完遂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體만 있고 用이 없으면 제 自身 혼자만이 自身을 爲하는 사람이 되고 이 世上에서 남과 相接할 수 없는 孤身隻影이 되고 易理에는 이러한 사람을 器局의 좁은 小人이라 하고 惡을 犯하는 者는 남의 生을 爲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小人들이라고 한 것이다.

器局의 좁은 小人들은 그 眼界가 적으므로 그 個體의 生을 營爲할 때에 저 혼자가 제 生을 爲하드래도 社會에 큰 害가 없는 것이나, 만일 그러한 小人들이 社會의 支配權을 가지는 때는 社會로 하여금 自己의 個體를 奉養케 하여 드디어 큰 惡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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